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문단 편집) == ''Law, Legislation and Liberty'' == || [[파일:external/www.suhrkamp.de/1289_foucault_michel.jpg|width=180]] || || [[미셸 푸코]] || 그는 ''Law, Legislation and Liberty(법, 입법, 그리고 자유)'' 3부작 (1973, 1976, 1979) 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이 마땅히 받아야 할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다. 왜 자신의 사상이 다른 사상에 비해 우월함에도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데 실패했을까? 하이에크의 대답은 구성주의적 합리주의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진정한 진보는 실패하게 된다. 진정한 진보는 인간 행동의 결과가 서로 얽혀 생겨난 자생적 질서의 결과이지, 인간 이성의 설계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자생적 질서는 진화의 결과로 형성된 것으로 만든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 이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번영과 자유를 가로막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생적 질서에 대한 강조는 그를 [[소스타인 베블런]], [[조지프 슘페터]]와 더불어 경제에 대한 진화적 접근의 선구자로 인식되게 하였다. 그가 합리주의가 진정한 자유를 파괴한다고 공격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격으로, [[미셸 푸코]]는 하이에크를 [[https://www.washingtonpost.com/posteverything/wp/2014/12/11/why-michel-foucault-is-the-libertarians-best-friend/?utm_term=.7418005a787c|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하이에크는 인간은 [[집산주의]]적 본능을 갖고 있다고 논한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되려면, 이러한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것은 쉽게 저지할 수 없다. [[사회 정의]](social justice)란 개념은 이러한 집산주의적 본능 때문에 생긴 미신으로, 열린 사회와 전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개념이었다. 따라서, 사회 정의의 추구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본능은 이성으로 저지될 수 있을까? 그 이성에 대한 신뢰야말로 사회주의를 불러오지 않았는가? 그는 구성주의적인 이성으로 계획된 시스템도, 본능도 아닌, 자생적 질서야말로 번영과 자유로 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논한다. 자유의 법(law)은 자생적으로 새겨난 행동의 준칙을 법으로 제정한 것이며, 개인의 자유라는 이상이 활짝 필 수 있도록 돕는다. 법의 지배(Rule of law)는 자유와 어긋나지 않는다. 현대민주주의는 다수의 폭정이나, 정치적 이익의 문제 때문에, 나쁜 입법(legislation)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해서는 입법부의 권한을 제한할 것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헌법이다. 헌법은 의회가 갖고 있는 과도한 민주성을 제약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자유를 보존할 수 있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무제한적 민주주의가 생겨나고, 무제한적 민주주의는 인간의 구성주의적 이성과 집산주의적 본능으로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전체주의적으로 타락시키게 된다. 무제한적 민주주의가 지나치게 강하게 될 경우에는, 과도한 민주주의를 제한해야만 자생적 질서가 유지된다. 이것이 하이에크의 제한적 민주주의 이론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도적 행동의 가치를 너무 낮추어 평가했다는 비판이 나오게 된다. 자생적 질서는 인간이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인간의 의도적인 산물이 아닌 사회적 질서이다. 자생적 질서 속에서 각개인은 사회에서 주어진 행위준칙을 준수한다. 인간은 이미 주어진 자생적 질서와 행위 준칙 속에서 자유롭게 행위한다. 이러한 상태가 하이에크가 강조하는 소극적 자유의 상태이다.[* 김균, 박순성 (1997). 일반논문 하이에크 자유주의의 폐쇄성과 내적 균열:민경국, 《진화냐 창조냐》에 대한 비판적 서평. 사회비평, 17, 258] 그런데 이러한 사회질서, 자생적 질서가 왜 바람직한 사회형태인가? 이미 주어진 진화의 산물, 전통의 산물이기 때문에 옹호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누군가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전통과 진화의 산물이지만 자유주의 사회가 아닌 카스트 제도 등은 어떻게 판단되어야 할 것인가?''' 과거에 의해 주어진 행위준칙을 그저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인가?[* 김균, 박순성 (1997). 일반논문 하이에크 자유주의의 폐쇄성과 내적 균열:민경국, 《진화냐 창조냐》에 대한 비판적 서평. 사회비평, 17, 258] 하이에크 자신의 이론은 구성주의적 합리주의, 즉 치명적 자만으로부터 자유로운가? 하이에크는 질서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에서처럼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인 것이라고 역설해왔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개혁, 자유주의적 제도 개선을 언급할 때 그는 구성주의적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개혁이나 제도 개선은 하이에크 자신의 정치 설계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구성주의적인 체계를 공격하는 자신의 체계 자체가 구성주의적으로 설계된 결과물이라는, 자기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게 된다. || [[파일:external/theredphoenix.files.wordpress.com/pinochet2.jpg|width=200]] || || [[피노체트]] ||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후로 그는 정책적인 제안을 많이 했지만, 그의 제안들은 사람들을 당혹케 만들었다. [[피노체트]] 정권을 [[https://en.wikiquote.org/wiki/Friedrich_Hayek_and_dictatorship|옹호한 것이나]](물론 하이에크가 피노체트의 시장 정책은 긍정하였으나 정권 자체를 지지하지는 않았다는 자료 역시 존재한다. [[https://mises.org/es/wire/no-hayek-no-apoyo-el-regimen-de-pinochet|#]])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이란에 폭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나, 화폐를 국가가 발행하지 않게 하고 민간에 맡기자고 제안한 것이나, 45세가 된 사람들로만 임기 15년으로 의회를 구성하자는 제안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그의 정책 분석가로서의 능력과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안들이 현실적이기는 한가? 이러한 정치 개입이나 정책 제안은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하지만 하이에크는 이러한 것 또한 타락한 현대 민주주의로부터 자유의 법을 지켜내기 위한 대가로 생각했을 것이다. 자유를 옹호했던 하이에크의 사회 구상은 [[엘리트주의|집산주의적 본능의 대중을 억제할 수 있는 엘리트에게 의존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